작품은 비로소 무대 위에서 완성됩니다.
이고르 레빗(Igor Levit)은 세계 최고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손꼽힙니다. 크리스토프 벨렌도르프가 독일 베를린의 호텔 아들론에서 38세의 예술가 이고르 레빗을 만났습니다. 음악 속에서 마법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주얼리는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사랑이 왜 무조건적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독서 시간: 약 12분

크리스토프 벨렌도르프: 이고르, 당신은 장난끼가 넘치는 것 같아요.
이고르 레빗: 글쎄요.. 저는 천사같이 착한 걸요.
벨렌도르프: 당신의 그 장난꾸러기 같은 성격이 우리의 만남을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몇 년 전 포르츠하임에서 열린 생일 파티에서 처음 만났을 때, 특별한 일이 있었죠. 당신은 그때,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늘 그러하듯 내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이끌어줬어요. 사실 그때 당신은 연주하기에도 바빴는데 말이죠. 하지만 당신은 나를 데려가 손님들 앞에서 베토벤 곡을 연주하도록 설득했어요. 그때 왜 그랬던 거죠?
레빗: 처음부터 당신이 연주를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는지 보았고 느꼈어요. 부담감과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렇지 않았다면 전 결코 강요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긴장되고 숨고 싶지만, 내 마음이 원하는 일인것 같아'라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그저 격려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 선택이 옳았다는 걸 당신이 보여줬어요. 그때 저는 그저 당신에게 작은 용기를 준 것뿐이죠.

벨렌도르프: 고마워요. 덕분에 좋은 추억이 됐어요. 현재,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이면서 동시에 하노버 음악, 연극, 미디어 대학교에서 피아노 교수로 재직하며 강의를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레빗: 그들은 이미 훌륭한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그들이 이 배움과 영광의 시간이 끝나고,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졌을 때 직면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있어요. 어느 날 그들은 세상으로 나가야 하고, 그곳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을 거예요. 그럼 그들은 그곳에서 어떻게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저 망망대해 같은 곳에서 삶의 의미를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그래서 누군가가 제게 와서 어떤 곡을 연주하면, 저는 이렇게 말해줘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연주하면 된다고. 작곡가가 쓴 것을 바꿔 주체적으로 연주해도 괜찮다고요. 저는 당신이 '처음 악보를 보고 배우는 단계' 에서 '자연스럽게 악보를 넘기는 단계' 로 성장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만일 학생이 '그냥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았어요'라고 대답한다면, 그 답변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그런 태도로는 나에게 배울 수 없어요.
벨렌도르프: 배울 수 없다고요?
레빗: 네, 맞습니다. 제 질문의 핵심은 음악이 말하려고 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에요. 이 작품을 완벽히 이해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연주를 할 수 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실패합니다. 바로 거기서부터 음악 작업이 시작돼요. 기본적으로 저는 학생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가능한 한 많이 연습하며, 가능한 한 많이 배우는 것을 통해 자신감을 키우도록 격려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토리의 한 측면, 즉 예술적인 측면이에요. 여기에서 마법과 매혹이 탄생됩니다. 나에게 놀라운 재능이 있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내가 당신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당신은 콘서트 티켓을 사지 않을 거예요.
벨렌도르프: 그럼 그 스토리의 다른 측면은 무엇인가요?
레빗: 아마 놀라겠지만, 타고난 재능이 항상 성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건 당신이 삶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는 거죠. 첫 학기부터 저는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돈을 관리하고, 세무사를 고용하라고. 그리고 진실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너를 바로잡아주는 친구들을 만나라고. 식사 후엔 바로 그릇을 씻고, 일은 미루지 말고 바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이죠.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음악을 만드는 공간이, 예술만을 위한 시간들이 점점 줄어들 거라고요. 이렇게 저는 학생들과 인생의 한 부분, 즉 1 더하기 1이 11이 되는 부분과 1 더하기 1이 2가 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벨렌도르프: 당신이 다른 피아니스트 서너명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천재적인 베토벤 연주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고 알고 있어요. 당신이 포르츠하임에서 우리를 위해 <비창(Pathétique)>을 연주했을 때, 그 순간은 나에게 마법과 같았습니다. 제가 자주 연주하는 곡인데, 그럼에도 이전까지는 느끼지 못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죠. 그게 무엇일까요?
레빗: 당신이 말해보세요, 그게 무엇이었는지.
벨렌도르프: 그 곡이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마치 곡이 멜로디를 얻은 것 같았죠. 그리고 나는 그것이 연주의 테크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레빗: 맞아요. 물론 모든 것은 매우 많은 부분에서 테크닉과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제 생각과 마음을 손에, 연주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아마추어일 뿐이죠. 하지만 당신이 느꼈다는 그 느낌은 당신의 경험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 연주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저는 늘 그래요. 콘서트를 앞두면 공연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끝나면 그렇게 끝이에요.
벨렌도르프: 당신에게 음악 작품이 무대에 올릴 만큼 완성되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레빗: 그 작품을 연주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저는 무대에 올라요.
벨렌도르프: 연주할 수 있는 때라는 건, 언제를 뜻하나요?
레빗: 작품에 따라 다르죠. 때로는 일주일, 때로는 3일, 때로는 3개월이 걸리기도 해요. 하지만 무대에 바로 올라가요. 한 순간도 더 기다리지 않아요. 그리고 무대 위에서 배우는 거예요. 방 안에서 연습하는 것만으로 연주를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 연주는 결국 관객을 위한 것이니까요. 작품은 무대 위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관객들의 반응을 느끼며 나만의 해석이 탄생하기 때문이죠.
벨렌도르프: 벨렌도르프 브레이슬릿을 착용하고, '플렉시블 골드(Flexible Gold)'도 착용해 본 적이 있으시죠. 우리는 오랫동안 연구 개발 과정을 거쳤어요. 우리가 원하는 브레이슬릿이 언제쯤 완벽히 구현될지 고민하면서요. 17년이 지나고서야 완성했습니다. 당신은 '플렉시블 골드'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레빗: 저를 아는 사람들은 지금 제가 당신에게 말하려는 것이 저의 최고의 경험임을 알 거예요. 브레이슬릿을 착용하고 3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어요. 저는 제가 브레이슬릿을 착용했다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그것이 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 되었죠. 제가 아주 사랑하고, 저와 관계 있는 모든 것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삶의 일부가 된 것들이에요. 착용하고 벗는 물건을 넘어 그냥 당연한 존재처럼 느끼게 되는 것 말이죠.
벨렌도르프: 그 말은 당신에게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인 것 같아요. 벨렌도르프 주얼리는 종종 두 개의 이름을 가집니다. 하나는 우리가 짓는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착용자가 짓는 이름이죠. 당신은 착용하신 브레이슬릿을 '라이프(life)'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왜죠?
레빗: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을 물었을 때, 저는 검정, 그리고 빨강을 말했어요. 그 다음 우리는 불과 얼음에 대해 이야기했고, 저는 녹는 얼음의 이미지를 언급했어요. 그것은 두 개의 강력한 힘이 만나는 모습이었어요. 가장 단단한 극한의 차가움과 압도적인 열기의 만남이었죠. 얼음은 여전히 단단하고 차갑지만, 고 있어요. 그 두 가지 존재, 그 둘 사이의 긴장, 그것이 제 삶을 결정한다고 믿어요.




벨렌도르프: 예전에 반지와 피아노 때문에 작은 사고를 겪은 적이 있죠?
레빗: 네. 반지를 낀 채로 베토벤의 해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연주하다가 건반을 조금 세게 치는 바람에 건반 일부가 깨졌어요.
벨렌도르프: 그 이후로 피아노를 칠 때는 반지를 끼지 않겠죠?
레빗: 가끔 작은 다윗의 별 모양의 반지를 새끼손가락에 낄 때가 있어요. 그 반지를 제외하면, 그 사고 이후로는 더 이상 끼지 않습니다.
벨렌도르프: 그래서 우리 둘 다 당신이 브레이슬릿과 어울리는 반지를 낀 채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거라고 생각했죠.
레빗: 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그리고 크리스토프 벨렌도르프가 작은 상자를 테이블 위에 꺼내 놓았습니다. 이고르 레빗에게 눈을 감고 손을 내밀어 보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는 레빗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줍니다. 레드와 블랙 컬러, 그리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벨렌도르프: 눈을 떠 보세요.
레빗: 와, 정말 놀랍네요. 이런, 정말 아름다워요. 이고르 레빗은 일어나 창가에 있는 피아노로 걸어갑니다. 그는 앉아서 반지를 바라보며 멘델스존의 <무언가(Liedern ohne Worte)> 중 하나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5분 후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레빗: 이 반지는 내가 손가락에 끼어 본 것 중 가장 부드러워요. 정말 놀라운 것을 만들었군요. 이 반지가 어떻게 회전할 수 있는지, 이 특별함에 대해서도 설명을 듣고 싶어요.
벨렌도르프: 기꺼이 설명해 드리죠. 여기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어요, 사실 세 가지죠. 첫 번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예요. 아내 아이리스(Iris)가 처음으로 임신했을 때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새벽 3시에 그녀가 병원에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왔어요. 진통이 시작됐다고 했죠. 저는 최면에 빠진 것처럼 도시를 가로질러 운전했어요. 마지막 교차로에서 오른쪽에는 병원, 왼쪽에는 묘지로 가는 표지판이 있었어요. 그곳에 할아버지 알렉산더(Alexander)의 묘지가 있어요. 저는 그분을 매우 사랑했고, 우리 아들에게 그분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어요. 저의 이 경험은 아내에게 모든 시작은 이미 그 안에 끝을 품고 있으며, 모든 끝은 동시에 새로운 시작임을 상징하는 링을 선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지의 회전은 무한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벨렌도르프 스피닝 링(Spinning Ring)의 탄생 스토리예요.

레빗: 다른 두 이야기는요?
벨렌도르프: 고객과 친구들로부터 '일반적인 반지' 는 더 이상 끼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을 특징짓는 것은 바로 생동감, 지속적인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당신은 하우스 콘서트를 열며 생동감 넘치는 기회를 창조해냈습니다. 이러한 생동감, 삶에 대한 태도가 바로 벨렌도르프 스피닝 링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는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에게 회전은 어떤 의미와 연결되나요?
레빗: 방금 당신이 설명한 내용이 저에겐 매우 공감되는 부분이에요. 저는 생각에 한계를 두지 않아요. 과정 속에서 생각합니다. 목표를 세우지 않고, 그저 할 수 있는 한 계속해서 일을 이어 나가고 싶을 뿐이에요. 어떤 하나에서 다음이 생기고, 또 그 다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돌고 도는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의 추모식을 기억합니다. 그때 어떻게든 참으려고, 울지 않으려고, 약해지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장례식을 마친 뒤 교회 앞 잔디밭에 앉아 펑펑 울었어요. 그 순간 휴대폰이 울리더니 가장 친한 친구가 자신의 딸이 방금 태어났다고 기쁨에 가득찬 음성으로 소식을 전해줬죠. 이 절묘한 타이밍에 저는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하지만 그것은 구원의 순간이었습니다.
벨렌도르프: 반지를 자세히 살펴보세요. 사실 이 반지는 세 개의 반지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고민했어요. 반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회전하도록 설계할지, 아니면 각각의 반지가 각각 회전하도록 설계할지.
레빗: 왜죠?
벨렌도르프: 당신이 대답해 봐요. 당신의 삶에서 세 개의 반지는 무엇을 상징하나요?
레빗: 자주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지금 당신은 피아니스트인가요, 아니면 정치적 피아니스트인가요? 당신은 이쪽인가요, 저쪽인가요? 이런 질문들은 끊임없이 쏟아집니다. 사람들이 삶을 단순화하려는 시도인 것 같아요. 하지만 나는 동등하게, 그리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이라고 대답해요. 내가 절대 하고 싶지도 않고 아마도 결코 하지 않을 일은 바로 어딘가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일 테죠. 나는 모든 일을 동시에, 그리고 동일한 에너지로 합니다. 내 삶의 각 부분은 다른 형태의 에너지가 필요해요. 하지만 이 부분들이 함께 모여야 내 삶이 완성돼요. 이론적으로는 여덟 개의 반지가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각각은 개별적으로, 독립적으로 회전해야 해요. 모든 반지는 맡은 역할이 있어요. 삶에서 내가 관심을 두는 모든 부분에 나름의 역할이 있습니다.
벨렌도르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주얼리와 음악에서 장인정신과 예술이 완벽하게 결합된다는 점, 열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기술만으로도 부족하다는 점에 빠르게 동의했습니다. 사랑에서 비롯된 최고의 가치를 지향하는 벨렌도르프의 모토. 이를 음악에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요?
레빗: 중요한 것은 당신에겐 사랑, 내 경우 피아노 연주에 대한 사랑이 그토록 크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작업할 수밖에 없는 거죠. 누군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그 순간 바로 그에게 말해요. “그만둬.” 나는 예술가예요. 그래야만 하고요. 나에게 예술은 직업이 아니에요. 음악이 내 영혼의 양식이기에, 그것이 필요한 거예요. 다른 선택이 없다면, 당신은 진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